한 쪽 성경공부 29.ONE  PAGE BIBLE STUDY 29_    Ver.9.07

김민호 목사 지음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 5




 (Diachronic synopsis)


 "하나님의 나라"는 "아들의 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팔려버린 인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속하시고 저들의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땅에 임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요19:3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구속하신 ‘하나님의 지혜’(고전1:24/고전2:7-8)셨으며 또한 ‘하나님의 비밀’(골2:2/골1:27)이셨습니다. 이 비밀은 진리요 생명이었고, 천국의 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의 눈에는 쉽게 보이지 않았습니다.(눅8:10)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성자 예수께서 이 땅에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죄인들을 그의 피로 구속하시고 이루신 ‘아들의 나라’입니다.(골1:13)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과 보좌와 통치권, 정사와 권세, 또한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음 받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성령께서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골1:13-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아직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데...


            Contents
1. 예수님을 노래하는 지혜자
2.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 I'm...)의 예수 그리스도
3.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거부하는 유대교
4. 아들의 나라
5. 아들의 가르침



 
돌아가면서 읽기
(Reading one by one)





예수님을 노래하는 지혜자


  고대 사회는 지혜를 숭상하고 추구하던 시대였습니다. 이집트와 바벨론에서도 지혜문학이 있었습니다. 특히 이집트에는 주전 1,300년-1,900년경에 잠언과 유사한 어휘로 된 자신의 아들에게 삶을 교훈하는 한 왕의 가르침인 “아멘-엠-오페(The Instruction of Amen-em-Ope)”가 있었습니다. 또한 주전 1,500-1,000년경에 바벨론의 지혜문학 ”지혜의 조언(Counsels of Wisdom)이, “아카드 잠언(Akkadian Proverbs)"등이 있었습니다. 1)
  이러한 지혜의 문학의 성장은 솔로몬 때에서 절정을 맞게 됩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기브온 산당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리자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3: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가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과 함께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셨습니다.(왕상4:29) 그리하여 천하의 모든 왕들이 그의 지혜를 들으러 솔로몬에게 나아왔습니다.(왕상4:34) 그리하여 그가 지은 잠언의 수는 무려 3,000이나 되었습니다. 이처럼 지혜의 최고봉에 도달한 지혜자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지혜2)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23. 만세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24.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25.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26.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27.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28.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29.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로 명령을 거스리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30.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31.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잠8:22-31)



 지혜의 정상에 도달한 솔로몬은 그가 고대 근동의 지혜문학의 한계를 넘어서 곧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어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솔로몬이 가르쳐준 인격화된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가 하나님의 ‘말씀(λóγoς,로고스, the Word)’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태초에 말씀(λóγoς)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1-3)


"9.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9-14)


 말씀이신 로고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함께 만물의 창조주로서 하나님의 품에 있는 독생하신 아들이셨습니다.(요1:18) 요한 1서에서는 로고스 곧 예수 그리스도를 선재하신 ‘생명의 말씀’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 (요일1:1-10)


 사도 바울은 선재하신 분, 태초에 아버지와 함께 만물의 창조주로 계시다가 이 땅에 오신 분이 ‘생명의 말씀’(the Word of life)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1:13-17)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아들의 나라'로 불려집니다. 천지 만물이 창조되던 태초에 선재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고전2:7-8)이시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요1:1)이셨으며 "영원한 생명"(요일1:2,5:11)이셨습니다.


"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고전2:7-8)

이 유대인들이 깨닫지 못했던 메시야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말씀이신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만민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헐어버리고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케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모든 사람들이 들어가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입니다.(골1:13)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 I'm...)의 예수 그리스도



신약 성경은 헬라어로 쓰여졌습니다. 그 헬라어에 ‘에고(!Egwv, I)’와 ‘에이미(eijmi, am)’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나는...이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직접 사용하신 표현들인데 유독 요한복음에 많이 나오는 표현입니다. 이 ‘에고 에이미’를 통하여 우리는 선재하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요한이 증거한 예수 그리스도는 "에고, 에이미"의 메시야였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12...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2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35...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6:35)

"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 " (요6:51)


“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요10:7)


“12.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요10:11-12)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5)


 성경은 ‘에고 에이미’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 되심과, 이 땅에서 유리하는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들 곧 마귀의 권세 아래 어두움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비추는 생명의 빛이 되심과, 그 양들을 죄로부터 구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러 오신 선한 목자 되심과, 또한 구속받은 모든 성도들을 마지막 날에 부활시키시고(요6:39,40,44,54) 영생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는 ‘구원의 문’ '천국의 문'이 되심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의 시작과 마침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계22:13)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거부하는 유대교



 바울은 유대교에 심취한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대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유대교에 심취했는지 그는 자신의 서신서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갈1:13-14)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극심하게 거부하던 유대교 신자였으며, 바리세인 중에 바리세인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하여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 생명을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사도’가 되었습니다.3) 그러나 아직도 유대교 신자들은 선재하신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형상이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와 너(I and Thou)의 관계철학으로 기독교 교육에 기여한 20세기의 종교 사상가 중에 한 사람인 유대교 철학자 마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라는 사람은 예수님에 대하여 자신의 믿음과 생각을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나는 유대인 공동체가 그 개혁(renaissance)의 과정에서 예수를 유대의 종교적 역사 속의 위대한 인물로서만 아니라 그 마지막에 이스라엘과 세상의 구원이 성취될 천년왕국에까지 이르는 메시야 사상의 유기적 발전의 맥락에서도 인정하게 되리라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내가 그와 똑같은 비중으로 굳게 믿는 것은 우리가 예수를 결코 오신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메시아에 대한 열망(passion)의 심오한 의미와 모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4)


  마틴 부버와 같은 사상가도 유대인들이 결국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메시아 관에 부합하는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었던 사람이었지만 그는 선재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유대교를 다른 것들과 함께 초개와 같이 버렸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유대인들은 아직도 기독교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그리스도인의 수는 많지 않습니다. 현대 이스라엘 유대인들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예후딤 메쉬히임’이라 불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후에는 유대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게 됩니다.(계15:3,14:12)






아들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아들의 나라”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되는 나라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서 영원히 찬양받으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 심문 중에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36.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18:36)


 그러자 심문하던 빌라도가 물었습니다.


“37...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요18:37a)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37...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
(요18:37b)


 진정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셨습니다.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의 나라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제자들은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제자들 중에 섬기는 자’로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의 경쟁이 불필요함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눅22:29-30)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동일하게 받은 사도였습니다. 그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위로의 편지를 썼습니다.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1:10-11)


"하나님의 나라"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아들의 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라고 불립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나라'를 동일한 나라로 부르고 있습니다.


"5.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7.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
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5:1-9)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풀어주신 천국의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의 왕이신 옛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천국의 복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예수는 왕”, “예수는 주”라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아들의 가르침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천국 복음이었고 천국의 아들과 딸들이 살아야 할 삶의 지침이었습니다.5) 하나님 나라에 초대받은 천국 백성들의 삶은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천국의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한정된 지면 때문에 몇 가지만 아들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롬1:7,엡2:8,벧전1:9) 아래서 "하나님의 초월적인 은혜"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거룩함과 청교도적인 엄격한 삶을 무시하기 쉽습니다. 믿음의 자녀들은 율법이 구원의 조건은 아닐지라도(행15:10,롬3:20) 율법을 통해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 거룩함, 의로움, 그리고 성결한 삶 등을 실천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을 완전하게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46.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5:46)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마5:17)

예수께서 이어 율법의 불멸성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

그러므로 율법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19-20)


 천국의 백성들은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서기관이나 바리세인들이 보여준 외식(外飾)적인 삶보다 더 나은 믿음의 삶을 살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5:17-20) 주님은 진실한 믿음의 삶이 성도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셨으며 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야고보의 가르침이 복음적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셨습니다.(약2:26) 그러나 우리는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실천해야 합니다. 율법의 완성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막12:29-31)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부활이 없다고 예수님을 시험을 했습니다.(마22:23-33) 그런데 예수께서 사두개인들이 대답할 수 없도록 만드셨다는 소문이 퍼지자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모여들었습니다.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시험하여 물었습니다.


“36.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마22:36)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37...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39)

예수께서 성도들은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 바쳐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율법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이처럼 가르쳐주셨습니다.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12-1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폐하시지 아니하시고 완전케 하셨는데 그것은 가장 큰 사랑으로 우리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친구 삼아 주셨고 우리를 위하여 죽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구(우리)를 위하여 죽어주심으로써 가장 크고 위대한 사랑을 보여주시고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하게 실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율법을 완전하게 이루어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면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은 믿음의 형제를 위하여 죽는 일조차도 당연한 일이라고 소리 높였습니다.


“3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한1서 3:16)



마음과 육체를 깨끗하게 하는 삶


  남녀 간에 요구되는 십계명의 7계명인 간음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남녀 간에 성적 간음(adultery)의 개념을 확대하셨습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간음이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셨습니다.(마5:27-29) 이러한 정신적 간음에 빠져들게 하는 지체가 있다면 아마도 "눈"일 것입니다. 눈으로 들어오는 죄 역시 무서운 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죄를 범하게 하는 눈 하나를 빼어버리고 하나의 눈을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죄짓는 두 눈을 가지고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18:9) 이것은 눈으로 들어오는 그 정신적 간음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경계하신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성(性)이 상품화 되어버린 지금 영화, 소설, 드라마를 비롯한 수많은 대중문화가 성도들의 경건과 거룩한 삶을 헐어내고 있으므로 경건의 훈련이 없는 성도들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완전한 부부관계"와 "완전한 가정"을 만들어가는 것뿐인데, 결국 이혼은 또 다른 간음죄를 생산하게 되는 것입니다.(마5:32) 예수께서는 마음과 육체 또한 성결하게 할 것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삶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천국의 자녀들의 규범은 세상 사람들의 그것과 다른데 성도들이 가져야 할 최고의 규범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도들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완전한 믿음의 모습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율법에 있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가르침은 악한 자들에 의하여 자행되는 지나친 보복을 금지한 것입니다.(마5:38)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보다 더 나아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고 오른편 뺨을 치는 자에게 왼편 뺨도 돌려 대고,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가지게 하며,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구하는 자에게 주며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가르침으로써 율법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랑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5:38-3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으며 살아가는 수동적인 삶은 결코 아무런 의(義)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이웃과의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가치관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랑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데 그것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바로 이해할 때 가능해 지리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열어 보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과 악인에게 따스한 햇빛을 함께 비춰주시고 또 의인의 밭과 악인의 밭에 함께 비를 내려주심으로써 원수까지도 악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지만 의인의 영혼과 악인의 영혼 모두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성도들은 천국을 소유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방인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3-48)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천국의 자녀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신이 사랑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만 사랑하는 이방인들의 삶의 한계를 넘어서서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이러한 믿음의 삶에 도달하게 되면 "하늘 아버지"(마5:48)를 닮아가는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들의 삶을 통해서 이웃들에게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삶


  우리는 창세기에서 이미 공부했듯이 인간의 삶의 자리는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 이 땅은 엉겅퀴가 나오는 참혹한 현실로 바뀌었음을 배웠습니다. 사람의 수고와 노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농부가 씨앗을 심어놓고 물을 주고 추수할 때를 기다리지만 수고하고 기다리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추수 전에 적당한 햇빛과 늦은 비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농사를 짓지만 농사가 풍년을 맞이하려면 하늘로부터 비가 내려오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믿음의 도구였습니다. 이 기도를 통해 인간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사람들은 기도할 때 많은 사람들이 듣는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중언부언하며 말을 많이 했습니다. 이방인들은 기도를 반복하고 횟수가 많아지면 기도가 응답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묵주를 만들고 자신들의 반복되는 기도의 수를 헤아렸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도는 아무런 유익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도의 모범을 가르쳐주셨습니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6) (마6:9-13)


 우리는 이 기도를 '주의 기도'라고 부르는데 천국의 자녀들은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모범에 따라 5가지의 내용과 순서를 본받아 기도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성호가 온 땅 위의 사람들에게 거룩하게 높여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두 번째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해서 열방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구원받아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세 번째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며(마6:34)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문제에 대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네 번째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회개하며 우리에게 죄 지은 자들의 죄를 용서해 주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 마귀의 시험과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해야 하고 또 악한 사람들의 손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면서 실족하지 않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께서 가르쳐주신 이러한 기도의 모형에 따라 예배 시 회중 기도 시에 주로 사용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기도할 때에도 이러한 기도의 모범에 따라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기도가 자칫 자신의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기도가 될 수 있으며 응답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약4:2b-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의 기도'를 통해서 성도들이 수행해야할 기도가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적극적인 삶


 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인간의 삶의 자리는 언제나 불완전한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삶의 자리에서 드려지는 기도는 곧 또 다른 행동 양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7-11)


 기도하는 성도들에게도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3가지의 삶의 양식이 필요함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기도 제목에 응답받기 위해서도 구하는 일, 찾는 일 그리고 두드리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응답 받아야 할 인간의 삶의 문제는 아담과 하와의 원죄의 결과 인간들의 삶의 자리에 남겨진 숙제들이었습니다.(창3:17-19)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산 자의 하나님이시므로 살아 있는 성도들 신원하시고 저들의 삶과 함께하시고 도와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막12:27,사41:10) 성도들은 이 땅에서도 적극적인 삶의 활동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약 시대에 바벨론에게 나라를 빼앗긴 유다인들에게 잃어버린 고토를 회복하고 복을 내려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임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하나님께 구하여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7.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찌라 ... ”
                          (겔36:37) cf.24-38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비한 응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께 구하여야 하며 천국의 백성들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존귀하고 성공적인 인생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천국 백성들은 그렇게 하나님께 받기만 하는 삶에 머무르지 말고 남을 대접하는 보다 높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윤리’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황금률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이것은 이웃들과의 인간관계에 있어서 지켜져야 할 지고한 윤리적 지침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가르침을 통해서 율법과 선지자들이 가르쳐 온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행해야할 가장 높은 수준의 윤리 의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이 가르침을 "황금률(golden rule, 黃金律)"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나타내야 할 삶의 양식이란 자신만이 대접을 받으려는 그러한 삶이 아닌 자신이 대접 받기를 원하는 그대로 이웃에게 대접하고 섬기는 ‘그리스도의 황금 윤리’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이란 자신이 대접 받기를 원했던 그러한 삶의 양식대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황금 윤리’를 소유한 성도들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는 삶


 그러나 천국의 백성들의 삶은 세상 사람들이 도달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황금 윤리”에 도달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은 천국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나라 역시 이 땅에서 보화를 쌓아놓을 수 있도록 문이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시몬의 집에 계실 때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분을 내며 값비싼 향유를 허비한다고 비난했습니다. 그 향유를 많은 값에 팔아 그 돈으로 가난한 자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수군거렸습니다. 이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마26:11)
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함이니라”(마26:12)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고 나면 이 땅에 가난한 자들이 남겨지게 될 것인데 그것은 제자들의 몫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거룩한 허비’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3) 이처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구제는 곧 천국에 보물을 쌓는 일로서 예수님의 장례를 위한 거룩한 허비처럼 천국에 쌓이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성도의 행실은 천국에서도 기억되어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서의 삶을 통해 천국에 보화를 쌓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19-21)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룬 그 어떠한 부귀와 명예도 삶을 마칠 때 가져가지 못합니다. 시편의 기자는 인생이 이룬 부와 영광도 이 땅에서 삶을 마치게 될 때에 가져가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16. 사람이 치부하여 그 집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 말찌어다
17. 저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 영광이 저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18. 저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찌라도
19. 그 역대의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20.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49:16-20)


 그러나 가져가지 못하는 보화를 하늘에 쌓을 수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19/29장에서 공부했듯이 예수께서는 보물을 천국에 쌓는 모범적인 사례에 대하여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해서도 가르쳐주셨습니다. 특히 구제와 같은 착한 행실로 보화를 천국에 쌓을 때에도 지켜져야 할 윤리가 있었습니다.






구제


예수께서는 이웃의 구제에 나설 때 "자신의 의"(마6:1)가 되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6:1-4)
 
 천국에 보화를 쌓고 상을 잃지 않는 구제가 되려면 세 가지가 지켜져야 했습니다. 첫 번째, 보이려고 해서는 안 되고(1) 두 번째, 영광을 얻으려고 해서도 안 되며(2) 세 번째, 의도적으로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3) 구제는 은밀히 진행되어질 때 비로소 하나님께 받을 상이 남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구제가 은밀히 이루어지지 않고 공개될 경우 "자신의 의"가 되어 자기가 그 상(賞)을 스스로 받게 되어 천국에서 상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마6:2)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구제와 선행은 거룩한 허비가 되어 보화를 하늘에 쌓아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천국에 들어가 그에 대한 상급을 하나님께 받게 되는 것입니다.(4)















1)시드부젤, 잠언 p7, 두란노, 1995


2) 지혜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시기 시작하시기 전 인격화 된 지혜를 가지셨다고 말씀한다. 이 지혜(나)를 하나님께서 ‘가지셨다’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카나니>는 전통적으로 “가지다, 얻다” “낳다” “창조하다”로 해석되어 왔다.(민영진 ,지혜의 전승과 설교,대한기독교서회,1991, pp76-82)
 주석가들은 <카나니>를 ‘가지다’의 의미로 번역하여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그 창조의 동역자로서 세우셨음을 주저 없이 말한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조화의 시작’ 전부터 나(지혜)를 가지셨으며’(22절)와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지혜)가 세움을 입었나니()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성자(聖子)이신 그리스도를 창조의 동역자로 세움 받으셨음을 말한다. 그리고 선재하신 하나님의 “지혜”가 잠8:27-31절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창조의 동역에 역동적으로 참여했음을 보여주는데 23절의 낱말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니사크티 : 원어는 나사크 )는 원어상 ’붓다‘란 뜻으로 제사장적 왕권에 대한 상징적 의례를 나타내는 ’기름부음‘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이 지혜가 선재하신 ’그리스도‘를 나타낸다고 말한다.(호크마 잠언 주석,기독지혜사,1993, p127)


cf.
요1:18 “No one has seen God at any time. The only begotten Son, who is in the bosom of the Father, He has declared Him."(NKJV)
"No one has ever seen God; the only Son, who is in the bosom of the Father, he has made him known."(RSV)
“No one has ever seen God, but God the One and Only, who is at the Father's side, has made him known."(NIV)




2)말씀(로고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이라면,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는 사람들이었다. (고전1:23)




3)갈1:12




4)고용수, 만남과 기독교 교육 사상, 장로회신학교 출판국, 1996, p65 재인용


5)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지면상 다 다룰 수 없어서 일부 내용만 다룬다는 것을 참조할 것.

6)
주의 기도

주의 기도는 마태복음에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의 구절은 고대 사본에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부분은 마가복음의 주의 기도에 나타나지 않는다.(눅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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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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