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쪽 성경공부 29.ONE  PAGE BIBLE STUDY 29_    Ver.9.07

김민호 목사 지음

 

칭의와 죄로부터의 자유



      

         (Diachronic synopsis)

제자들이 전파한 복음은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이신칭의”의 복음이었습니다.


 고대 기독교는 313년 서방을 통치하던 콘스탄틴 대제가 동방을 다스리던 리키니우스와 밀라노에서 맺은 칙령1)을 발표하면서 기독교를 공인했습니다. 그로인해 로마의 기독교 탄압은 중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자유를 되찾은 교회는 기독교의 순수성을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이방 종교의 풍습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교회는 말씀과 예전 등이 세속화되어 갔습니다. 교회가 세속화되어가는 1350~1500년 어간, 중세기가 몰락해갈 즈음 16C의 서유럽 교회는 각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세기가 끝나가고 근대 사회로 전환되어가는 때에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면죄부 속죄에 대항하여 비텐     베르크 성 문에 95개의 논제들을 붙임으로      써 그는 파문되고 종교 개혁의 불길이 타올랐습니다. 1523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쯔빙글리가 그리고 1534년 영국 교회는 헨리 8세가 수장령을 발표하고 로마 교회로부터 독립하였고 1536년 깔뱅은 <기독교 강요>를 출판하고 그해 파렐의 요청으로 제네바의 개혁운동에 가담하는 등 일련의 종교 개혁 운동이 민중적인 지지를 받고 일어나 교회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루터 이전에도 신앙과 구원이 성경에 있다고 믿으며 교회 개혁에 앞장섰던 영국의 인문주의자 위클리프 그리고 보헤미야의 후스와 같은 개혁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증거한 복음, 구속자 하나님의 복음,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이신칭의의 복음”은 16C 종교 개혁의 원천이었습니다.


 은혜의 복음이 선포되었지만 구교의 성도들은 구원의 조건이 되어버린 공덕 사상 때문에 구원을 확신하지 못해서 불안해하고, 은혜로 구원받은 받은 성도들은 은혜에 안주하여 행위 없는 음의 삶을 지속하고 있는데 ..

 


            Contents

1.몽학선생님 율법
2. 공의회가 생긴 이유
3.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된 공의회
4. 교회의 핍박
5. 면죄부와 복음
6. 현대의 이단의 도전



    
돌아가면서 읽기
    
  
(Reading one by one)

 

 

몽학선생님 율법


 모세를 통하여 내려주신 하나님의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법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담긴 계명들이었습니다. 이 율법은 사람들이 완전하게 지키면 스스로를 의롭게 만들 수 있는 지고하고 거룩한 법도였지만 인간은 그 모두를 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 율법은 창조주 하나님의 거룩함이 무엇인지 또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죄가 무엇인지, 사람이 어떻게 의롭게 되는지 등을 알려주는 몽학선생이었습니다.
이 몽학선생은 헬라어로 ‘파이다고고스:
παιδαγωγος)입니다. 이 몽학선생은 고대 헬라나 로마인들의 가정에 16세 이하의 자녀들을 학교 갈 때 데리고 다니며 그들의 행동을 지도하고 성인으로 바르게 자라도록 지도하는 가정교사로 고용된 노예였습니다. 이 몽학선생이 어린 자녀가 성숙한 성인으로 자라도록 돕는 친절한 가정교사인 것처럼 율법은 진리에 관하여 어린 아이와 같은 우리들을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 가정교사라고 가르쳐줍니다.(갈3:24-25)

"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3:23-27)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으로서 인간은 율법을 완전하게 수행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스스로 깨닫게 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율법은 우리가 스스로 완전해질 수 없는 죄인임을 인식하게 하고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율법의 요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룰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

사도 바울은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케 된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10:4)



 공의회가 생긴 이유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전해 받은 유대인들은 율법이 말하는 바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새로운 구원의 시대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주의에 의해 강력하게 도전받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 차례에 걸친 전도 여행2)과 로마 여행을 통해서 이탈리아 로마에까지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 위대한 사도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전도 사역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1차 전도여행은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실루기아, 구브로 섬(살라미, 바보), 버가, 안디옥(비시디아),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에 이르러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가 첫 전도 여행을 마치고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왔을 때 유대에서 어떤 사람들이 내려와서 이처럼 가르쳤습니다.


“1...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행15:1)


유대에서 내려와 이처럼 가르친 사람들은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아무런 권한도 부여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가르침은 안디옥 교회를 적지 않게 변론과 다툼에 빠뜨렸습니다.(행15:2) 그리하여 안디옥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이 구원 받음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외에 할례와 율법을 행해야 하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와 및 몇몇 증인들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이르러서 그곳에 있는 사도, 그리고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은 바울과 바나바 일행은 자기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 현장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역사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그 이야기를 들은 바리새파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어떤 사람이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5... 이방인에게 할례를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행15:5)


일은 더욱 복잡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성령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께 돌아오는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외에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 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 지 판단해야 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된 공의회


 사도와 장로들이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하는지 여부가 사도와 장로들이 결정해야할 첫 번째 공의회의 의제였습니다.3) 이 예루살렘 회의에서 많은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사도 베드로가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 7...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9.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행15:7-11)


베드로는 자신들이나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이방 그리스도인들이나 동일하게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형제들에게 멍에, 곧 자신들도 능히 메지 못하는 '율법'을 지키라고 강요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때 바나바와 바울은 복음을 전파할 때 하나님께서 이방인들 중에서 나타내신 표적과 기사를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말을 마치자 야고보가 말했습니다.


“13...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바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행15:13-20)


초대교회의 공의회는 베드로, 바울, 야고보 등의 사도들과 많은 장로들이 모여 ‘구원의 조건’을 심사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단순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할례를 받은 자들이 지켜야 하는 율법은 사도들도 지킬 수 없는 ‘능히 메지 못하는 멍에’라고 베드로가 고백하자 '율법의 준수'가 구원의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구원은 오직 ‘주 예수의 은혜’로 되는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행15:11) 베드로의 이야기가 끝나자 이번에는 야고보가 성도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주의해야할 몇 가지 사항을 일깨워주었습니다. 그것은 우상의 더러운 것(음식)과 음행, 그리고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했습니다.4)

 그러므로 초대 공의회의 결정은 율법은 유대인의 조상들도, 사도들도 능히 멜 수 없는 멍에이며 사람들은 예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었습니다.


 이단들의 도전

 유대주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이신칭의의 복음을 대적하는 이단의 효시였습니다. 이러한 이단의 도전은 유대주의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사람의 아들5)(人者, Son of Man)로 보내시어 고난을 받게 하시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인간들이 죄와 사망과 영원한 지옥의 형벌로부터 하나님의 나라의 영생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 때부터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위협이 되었으므로 교회는 이러한 이단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의롭다 인정받을 수 있다는 유대주의가 등장했을 때 예루살렘 공의회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라고 확인하는 첫 번째 공의회가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성경이 증거하는(딤후3:14-17)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에 대한 진리의 말씀에 대하여 잘못된 주장을 하는 이단들이 나타나 성도들이 현혹하였기 때문에 교회는 이러한 문제를 확실하게 규명해주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바른 진리를 소유할 수 있도록 규명해야 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공의회는 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계속되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유대주의처럼 교회의 복음의 본질을 위협하는 또 다른 이단이 있었는데 그것이 영지주의(Gnosticism)였습니다. 영지주의는 피조 세계가 어떤 저열한 영적인 존재에 의하여 창조된 것으로 이해하고 물질과 인간의 육체는 악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의 영이 육체에 갇혀있는 것으로 이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위에 여러 층의 천상적 영역이 있고 그것은 악의 세력에 의하여 지배받는데 악의 세력이 인간들의 영적 전진을 방해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인간의 육체를 악하게 이해했던 영지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악한 육신의 몸을 입지 않으셨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단지 인간의 몸으로 그렇게 보여지는 일종의 유령으로 이해하고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했습니다. 이것을 '가현설'이라고 합니다. 이로 인해 영지주의자들은 창조론, 성육신, 부활에 대해서도 다르게 해석할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영지주의는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지주의의 사상은 현대 이단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마르시온(Marcion)이라는 사람이 등장하여 교회를 위협했습니다. 마르시온은 구약의 하나님은 신약의 하나님과 다른 악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말씀을 부정하고 신약의 바울서신과 누가복음을 가지고 자신들의 경전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교회와 감독 그리고 경전체제를 갖추고 있었으므로 교회는 신약 성경의 경전화(
經典化
) 작업을 진행해야만 했습니다. 이단의 위험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어떤 한 가지의 진리를 잘못 이해하면 그로 인해 전혀 다른 변질된 복음으로 그럴듯한 체계를 잡게 되고 그 끝은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과 전혀 다른 복음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일단 이단 교리에 빠지게 되면 좀처럼 헤어나기 어렵습니다. 현대의 이단들 가운데도 영지주의와 마르시온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이단들이 있습니다.6)

 이단의 등장은 영지주의와 마르시온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사도시대, 속사도 시대, 교부시대(2~7,8세기), 313년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된 시대에도 복음을 변질시키려는 이단들의 도전이 계속되었으며 그때마다 교회의 공의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당시에도 이단의 도전이 있었고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단의 헛된 가르침에 빠지지 않도록 가르쳐야 했습니다.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1:6-12)


이처럼 어떤 사람이 이단에 빠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아래 앉아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단에 속해 있다고 지적받고 있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에서 나와야 합니다.



아리우스 주의와 신경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 있는 교회는 로마 제국의 통일과 안정을 바라는 황제들에 의하여 제국 안에서 이단 교리가 발생할 때마다 공의회를 소집시켜야 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인 알렉산더와 ‘같은 시(市)’에 있는 장로 아리우스는 여러 가지 신학적인 이슈로 알렉산더와 충돌했습니다. 아리우스는 하나님의 말씀이신, 로고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아버지와 동일하게 영원한 분이 아니라고 주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고 그리스도를 피조물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아리우스는 알렉산드리아와 동로마 제국의 여러 감독들에게 호소했고 이에 동조하는 동방 교회의 감독들이 있었으므로 동방교회는 분열의 조심을 보였습니다. 이때 콘스탄틴은 325년 소아시아에 위치한 니케아 시(市)로 감독들을 모으고 이 문제를 논의케 했습니다. 이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서 성경이 증거하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동일 본질(homoousios) 곧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본질 상 동일하심을 확인하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때 성령을 믿는다는 고백과 함께 삼위일체 신경이 채택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었습니다. 381년에 이르러 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열렸고 이때 그리스도의 신성이 다시 한 번 공인되었으며, 성령의 발원이 분명하게 선언되었고, 교회론이 첨가된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탄 신조(the Nicene Constantinopolitan Creed)가 채택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은 '니케아 신조'라고 부릅니다.
동방 교회도 역시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을 제정해 사용했습니다. 사도신경은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에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조들이 채택되는 것은 초대 교회 때부터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는 이단들이 등장해서 교회를 혼란스럽게 했기 때문에 교회는 바른 신앙의 규범을 신조로 만들어 확인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도 신경에는 삼위일체 하나님, 그리스도의 고난, 부활, 재림, 심판의 성경의 주요 내용을 교리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경의 목적은 이단의 주장으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고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위에 견고하게 세워 나아가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노력은 많은 공의회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공의회는 여러 가지 이슈들로 인해 소집되었고 콘스탄티노플에서만 381년(2회), 553년(5회), 680~81년(6회), 869~870년(8회) 네 번의 공의회가 열렸으며 다른 곳에서도 이단적 논쟁이 일어날 때 마다 공의회는 계속되었습니다.


계속되는 검증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이후에도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논쟁은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 Laodicea)에 의해 또다시 재현되었습니다.7) 그러한 논쟁은 콘스탄티노플 총 주교가 되게 된 안디옥 학파의 네스토리우스(Nestorius)와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시릴(Cyril)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하여 또다시 논쟁이 일었습니다. 이러한 논쟁은 마리아의 호칭으로 불거졌는데 네스토리우스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theotokos; bearer of God)라고 불려서는 안 되고 그리스도의 어머니라(christotokos; bearer of Christ)고 불려야 한다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마리아에 대한 호칭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가 마리아로부터 태어났지만 인간적인 본성과 인격만가지고 탄생하셨으며 신적 본성과 인격은 마리아로부터 오지 않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네스토리우스의 주장은 그리스도 안에 두 본성과 두 인격을 지녔다고 주장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갈등을 빚을 밖에 없었습니다. 교회가 혼란에 휩싸이자 431년 황제 데오도시우스 2세는 에베소에서 공의회를 열었습니다. 여기서 네스토리우스는 이단으로 정죄되었고 후에 페트라(Petra)라는 돌산으로 된 시(市)에서 여생을 보내야 했습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디옥 학파는 다시 한 번 논쟁을 해야 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의 한 수도승이었던 유티케스(Eutyches)가 그리스도는 "성부와 동일 본질(of one substance with the Father)"이나 우리와는 동일본질이 아니시다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성과 인성에 대하여 논란이 또 일었났습니다. 이 문제로 교회는 451년 칼케돈에서 공의회로 또 모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유티케스는 이단으로 정죄되었고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고 참인간이 되심을 분명히 했습니다. 칼케돈 신조에서 다음과 같이 천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과 완전히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며, 이 동일하신 분(예수 그리스도)이 신성에 있어서 완전하시고 인성에 있어서 완전하시며,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시고, 이성적 영혼(the rational soul)과 몸으로 구성되셨다. 그는 신성에 있어서 아버지와 동일 본질이시고 인성에 있어서 우리와 동일 본질이시지만 죄를 제외하고는 우리와 똑같으시다." 라고 천명하였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자(聖子)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2:6-7 )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요일5:6)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4:15)


" 7.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8.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요이1:7-8)


사도 요한은 성령의 사역으로 자신들이 수고하며 전파한 그리스도에 대한 성육신의 진리를 빼앗기지 말라고 권면하면서 온전한 상을 받으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현대에도 이단들이 여전히 일어나면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육신을 가지고 죄의 종노릇하는 사람들의 죄를 깨끗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롬8:3-4) 예수 그리스도는 성자 하나님이셨지만 인간들의 죄를 정결케 하기 위하여 인간과 같이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셨고 또한 참 인간이셨습니다. 바울은 증거했습니다.


“3...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롬8:3)


 그러므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구속사역은 율법의 요구를 다 행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무도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인정받을 수 없다고 선포했습니다.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율법 외에 “새로운 의”를 인간들에게 나타냈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의’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값없이 의롭게 되는 것이라고 증거했습니다.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0-24)



교회의 핍박


  사도들의 전도 사역에 힘입어 복음이 전파되면서 팔레스타인, 소아시아, 마게도니아, 로마에까지 세워진 교회는 놀랍게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이단들의 도전에만 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사회에서 복음이 전파되자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기독교의 성장에 위협을 느낀 로마 황제들은 제국의 안정적인 통치를 위하여 기독교를 핍박하는 종교 정책을 폈습니다.
   64년 7월 18일 로마 시에 엄청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화재가 54년에 황제에 오른 네로에 의한 것이라고 의심을 합니다. 네로는 방화의 원인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리고 박해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방화의 원인자들로서 기독교인을 박해했으나 후에는 단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를 했습니다.
베스파시안(Vespasian) 황제의 둘째 아들 도미티안(Domitian) 황제 때도 박해를 계속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황제숭배와 잡신 숭배를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κυριος)로 믿었기 때문에 핍박을 가했습니다. 이러한 도미티안의 박해 때에 사도 요한은 밧모섬으로 유배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아 요한 계시록을 썼습니다.
  이러한 박해는 2세기에도 계속되었습니다. 트라얀
(Traian) 황제는 기독교인들을 색출하지 않았지만 고발 건에 대해서는 법정에서 로마 황제 숭배와 잡신 숭배를 강요하고 그것을 거부한 사람들에 대하여 벌을 가했습니다. 이때 안디옥 감독 이그나티우스(Ignatius)가 원형극장으로 끌려가 순교했습니다. 그때 쓴 그의 일곱 편지는 당시의 순교자들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순교자 행전(Acts of Martyrs)은 극적인 순교의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주고 있습니다.8)

그 이후에 서머나 감독 폴리캅도 순교하였으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때 저스틴(Justin the Martyr)이 순교하였습니다. 2세기 동안 미신과 잡신 그리고 황제를 숭배하는 이교도 신앙은 기독교의 신앙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는데 황제들은 제국의 안정을 위해 기독교인들에게 이교도 신앙을 강요하면서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로마 전역에서 핍박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므로 다른 지역에서는 복음이 계속 전파되었습니다.
3세기에도 교회의 핍박은 계속되었습니다. 세베루스 황제는 혼합 종교정책을 썼는데 그는 태양신(Solinvictus, 정복되지 않는 태양)을 예배하도록 백성들에게 강요하고 모든 종교와 철학을 그 아래 통합시키려 했습니다. 그리고 황제는 기독교와 유대교로 회심하는 사람들을 사형에 처하도록 했습니다. 249년에 황제가 된 데키우스
(Decius)
는 로마의 옛 잡신 숭배를 회복함으로써 로마를 회복시키려는 종교정책을 폈습니다. 그는 잡신 숭배와 함께 자신의 상에 향을 피우도록 강요하고 그에 대한 증명서를 발급하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종말에 있을 666표의 모형이었습니다. 그 후 발레리안(Valerian) 황제가 교회를 핍박을 한 이후 교회는 약 40여 년간 평온한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306년에 황제에 추대되어 312년에 정식 황제에 오른 콘스탄틴(Constantin) 대제(大帝)는 313년 밀라노에서 동방을 다스리던 리키니우스와 함께 밀라노 칙령(勅令)을 공포하여 로마 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리스도교 박해를 중지시켰습니다. 그 칙령에는 기독교 박해를 그만 둘 것과, 국가나 개인이 빼앗은 교회의 재산을 반환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콘스탄틴은 교회와 성직자들에게 많은 특혜를 주어 교회를 지원했습니다. 이로서 교회의 핍박 시대는 끝났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면죄부와 복음


 이후 교회는 새로운 환경에서 신앙을 지켜 나아가야 했습니다. 핍박 속에서 순수한 신앙을 지켜왔던 교회는 중세의 긴 시간을 거치면서 초대 교회와 다르게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교도들의 신앙 관습들이 교회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부유해졌고 영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영생의 구원에 이르는 일에 행위에 의한 공덕이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교회의 타락은 성 베드로 성당을 지으면서 절정에 달했습니다.

  16세기에 이르러 가톨릭교회는9) 성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하여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모금을 했습니다. 그 모금의 수단으로서 면죄부를 판매했습니다. 면죄부는10) 가톨릭교회가 신자들에게 자신의 죄를 용서받는 수단으로서 제시한 것입니다. 그 면죄부는 ‘성자’들의 공덕과 관계가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 그리고 성인들은 자신이 구원받기에 필요한 그 이상으로 선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잉여의 선’을 만들어 놓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죄하시며 또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선은 무한정이시며 마리아의 공덕, 그리고 많은 성자들의 잉여 공덕은 다른 신자들의 죄를 탕감할 효력이 있으며 이 권한은 교회를 통해서 특히 교황을 통해서 그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11) 

  가톨릭교회는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한 자금을 알브레히트(Albrecht) 대주교를 통해 모금했으며  또 그의 수금 총책 도미니크 수도승 요한 테첼(Johann Tetzel)에 의해 모금되었습니다. 테첼이 돈 궤위에 “돈이 이 상자 속에서 땡그랑 소리를 내자마자 고통당하는 영혼이 연옥에서 벗어납니다.”라고 적어놓고 면죄부를 판매했습니다. 이 면죄부는 신자 자신뿐만이 아니라 죽은 자들에게 효력이 있는 것으로서 연옥에 있는 친척들을 위해서도 판매되었습니다.

  이러한 모금활동은 루터에게 종교개혁의 실마리를 부여했습니다. 루터는 테첼이 접근해오자 면죄부 남용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설교를 했으며 1517년 10월 31일에는 대학 게시판으로 사용되는 비텐베르그 성의 교회 문에 면죄부에 대항하여 95개 조항을 게시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중세교회는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16세기에 교회가 타락의 길로 접어들어 면죄부를 판매하기에 이르자 종교적 각성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독일에서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켰고, 프랑스의 칼빈, 스위스의 쯔빙글리, 스코트랜드의 녹스 등과 같은 많은 개혁자들이 종교 개혁을 일으켰습니다. 영국12)에서는 헨리 8세의 개인적인 이유를 시작으로 종교 개혁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종교적 각성과 개혁은 하나님의 구원은 율법과 행위 그리고 공덕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이신칭의’의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개혁자들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라는 기치를 들고 종교 개혁을 수행했습니다. 그러한 프로테스턴트 운동의 결과 현재의 개신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현대의 이단의 도전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를 세우시고,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 안으로 성도들을 이끌어 주십니다. 그리고 천국에 이르도록 동행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씨 뿌리는 비유에서 마귀가 가라지를 뿌린다고 이미  가르쳐주셨듯이, 사도 바울 역시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바른 교훈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쫓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딤전4:1) 마귀는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들의 활동을 통하여 결국 교리적으로 부패시키는 일을 하는데 이러한 사단의 활동은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바른 믿음과 교훈에서 떠나 다른 복음에 빠져들어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메릴 F 엉거(Merrill F. Unger)는 성도들에게 매우 중요한 점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는 성령께서 신실한 하나님의 종과 교사들에게 "진리의 영감"을 주는 것처럼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은 거짓 선지자들에게 힘을 더해 준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들의 활동이 더 자유로워질 것을 알고 있는데 그러므로 미혹케 하는 영을 받은 사람들의 ‘거짓된 영감’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고 다른 복음을 가르치는 거짓 선지자, 거짓 그리스도들은 결국 그를 추종하는 무리와 함께 이단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마귀로부터 잘못된 영감을 받는 거짓 선지자의 활동은 종말에 더욱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그 거짓 선지자들의 활동은 종말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인 ‘짐승’이 세상을 통치하게 되는 즈음에는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오게 하는 이적을 보이면서 짐승을 숭배하도록 현혹하여 사람들을 멸망으로 이끌어가면서 절정에 달할 것입니다.(살후2:8-12)  그러므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근신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할 것입니다. 바울의 권면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1) 밀라노 칙령

313년 콘스탄틴과 리키니우스가 맺은 이 칙령에는 기독교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특별히 기독교에 대하여 자유를 선포하고 박해를 중지시켰으며 또한 국가나 개인이 빼앗아 가지고 있던 교회의 재산을 도로 반환하도록 하고 있다. 콘스탄틴은 기독교를 최대한 장려하였으며 교회와 성직자들에게 여러 가지 특권을 주어 지원했다. 이러한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은 그동안 핍박만 받아오던 교회에 무한한 자유를 주는 것으로서 오히려 이러한 자유 속에서 중세 교회는 점점 타락의 길로 걸어가게 되었다.



2)   (* 각각의 지도는 아래 참조)

 

1차 전도여행 :

안디옥(수리아)->실루기아->구브로 섬(살라미-> 바보-> 버가-> 안디옥(비시디아)->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루스드라->이고니온->안디옥(비시디아)->버가->앗달리아->안디옥(수리아)



2차 전도여행 :


 안디옥(수리아) -> 수리아(지방) -> 길리기아(지방) -> 더베 -> 루스드라 -> 브루기아(지방) -> 갈라디아(지방) -> 무시아(지방) -> 드로아 -> 사모드라게 -> 네압볼리 -> 빌립보(마게도냐) -> 암비볼리 -> 아볼로니아 -> 데살로니가 -> 베뢰아 -> 아덴 ->고린도(1.6년간) -> 겐그레아(서원) -> 에베소 -> 가이사랴->예루살렘 


3차 전도여행 :


안디옥(수리아) -> 갈라디아(지방) -> 브루기아(지방) -> 내륙도로(윗지방) -> 에베소(두란노서원에서 2년 전도) -> 마게도냐 -> 헬라 ->빌립보 -> 드로아 -> 앗소 -> 미둘레네 -> 기오(앞) -> 사모 -> 밀레도 -> 고스 -> 로도 -> 바다라  -> (구브로 우편 바다로 지나)두로 -> 돌레마이 -> 가이사랴 -> 예루살렘


3) 공의회 기록 : 역사적 개요

325년  니케아 공의회  :
아리우스-(정죄) VS 알렉산더,아타나시우스- 동일본질(homoousios)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
동일본질 재확인, 니케아 신경 채택


431년 에베소 공의회:
네스토리우스(크리스토토코스-christotokos) VS 시릴(데오토코스-Theotokos), 크리스토토코스 정죄.


451년 칼케돈 공의회 : /
유티케스,단성론(monophysitism,정죄) VS 플라비안, 양성론,(One Person Two  Nature )


4)이는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고전8-10)에 관한 바울의 논의, 그리고 음행은 레18:6-20, 피에 관한 율법은 레17:10-14에 근거한다.


5)인자: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사역하실 때 제자들에게 자신을 가리켜 사용하신 그리스도의 호칭이다. 이 호칭은 히브리어 '벤-아담'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의 아들'이란 뜻이다. 학자들은 구약에서 나타나는 '인자'의 의미를 종말론적 구원자의 모습으로 사용된 것으로 이해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짊어질 고난과 대속적 죽음에 대하여 언급하실 때 그리고 종말에 있을 그리스도 자신의 영광스런 재림과 통치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사용하셨다. 인자는 고난 받으신 후 영광에 들어가시는 메시야에 대한 호칭이다.


6)
몰몬교는 예수님을 선재하신 영으로 잘못 이해하고, 여호와의 증인도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의 부활을 부정함으로써 그들은 더 많은 이단 교리를 만들게 되었다. 


7) 아폴리나리우스

삼위일체 논란 초기에 아폴리나리우스는 예수님은 인간들처럼 육체를 가지셨으나 합리적 영혼(the rational soul)의 자리에 로고스가 대신했다고 주장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인간으로서의 지. 정. 의를 소유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여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8)이형기, 세계교회사, p147, 한국장로교출판사, 1995.6.30


9) 가톨릭교회  :

 

 현재의 가톨릭교회는 로마교회로 불리기도 하는데 개신교회와 구분하여 부른다. 그러나 16세기 종교개혁이 이루어지기 전까지의 모든 개교회가 하나의 예수님의 교회라는 의미에서 가톨릭 교회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으로 고백하는 ‘공회’, '공교회'로 번역된 영어 ‘Catholic church’는 천주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 'Universal church'라고 번역한다.


10)면죄부:


면죄부는 “하나님의 공의가 요구하는 현재의 형벌은 아직도 남아 있고 이 요구는 현세나 내세에 즉 연옥에서 충족시켜야만 한다는 천주교의 교리에 근거해서 그 연옥의 형벌을 면제해 주는 대가로 판매되었다. 성경에서 연옥 교리를 지지하는 구절은 없다. 연옥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구속을 부정하는 것으로서 거짓 교리이다. 

  

11)롤란드 베인톤, 이종태 역, 마틴 루터의 생애, p47, 생명의 말씀사, 1994


12)영국의 종교 개혁:

 

영국의 종교 개혁은 루터, 쯔빙글리, 깔뱅 등의 종교 개혁자들의 개혁과는 조금 다르게 시작되었다. 듀터 왕조의 헨리 7세의 둘째 아들인 헨리 8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미망인인 왕비 캐서린과의 사이에서 아들이 없자 궁녀 앤 불린과 결혼하려고 하였으나 교황은 이를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 이 때문에 헨리 8세는 국왕을 영국 교회의 최고의 수장으로 하는 법률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고 교황권으로부터 교회를 독립시켜 국교회(國敎會)체제를 확립했다. 영국의 종교개혁은 민중적인 종교개혁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 사도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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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 사도 바울의 로마 여행]


 

 


26/2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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